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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晳 翁
작성일 2018-08-03 (금) 06:49
IP: 211.xxx.109
연극 대사 같은 청와대 논평
 

연극 대사 같은 청와대 논평


'1노 3김'이 맞붙은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노태우 후보는 노타이에 와이셔츠 차림으로 007 가방을 손수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참모들과는 아래위 구분 없는 원탁 테이블에서 회의했고 아기 안은 사진을 선거 포스터로 썼다. 그의 선거 구호는 '보통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군 출신 이미지를 희석해 선거에서 이겼다.

▶정치인들은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대중의 감정을 움직이는 방법을 활용한다. 이런 전략을 정치학에선 '미란다(miranda)'라고 한다. 각종 의식·행사 같은 이벤트를 만들어내고 지도자의 일화 등을 잘 포장해 대중의 감정적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둘째 날 참모들과 와이셔츠 차림으로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하나씩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한 사진을 공개했다.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아마도 넓게 보면 이 정부의 첫 미란다 활용 사례일 것이다. 그 뒤로도 대통령 기자회견장에서 대중가요를 틀고 각종 국가 기념식에 대중가수가 등장해 연극 형태로 진행하는 등 넓은 의미의 미란다 사례가 이어졌다.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줄 때도 대통령과 참모들이 장관 부부를 둘러싸고 앉아 꽃다발을 주는 이벤트 방식으로 진행한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의 각종 이벤트도 연출 기획자 출신인 탁현민 행정관 작품이라고 한다.

▶지난달 탁현민 행정관이 사직 의사를 밝혔을 때 임종석 비서실장이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는 수사(修辭)를 동원하며 만류했다. 최근 옥탑방 체험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박 시장에게 선풍기를 선물한 문 대통령 모두 대중의 정서적 지지를 노린 이미지 정치다. 정치인에겐 이미지가 자산이다. 그러나 이미지 못지않게 실질(實質)도 갖춰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휴가 중이던 청와대 대변인이 2일 리비아에서 무장 단체에 납치된 우리 국민에 대한 논평을 냈다. 그 논평에서 "그가 타들어 가는 목마름을 몇 모금의 물로 축이는 모습을 봤다" 등의 문학적 표현이 곳곳에 등장했다. "무장 단체에 대한 정보라면 사막의 침묵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대목은 시(詩)를 쓴 것 같았다. 문 대통령이 구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 했겠지만 도가 지나쳐 연극 대사 같은 느낌도 준다. 주요국 정상의 대변인이 이런 식의 발표를 한 경우는 기억에 없다. 그들도 이미지 정치를 모르지는 않지만 도를 넘으면 실질을 훼손한다는 생각일 것이다. 이미지 정치도 좋지만 지나치지는 않았으면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02/20180802033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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