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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계일보
작성일 2020-10-16 (금) 05:02
IP: 121.xxx.174
손편지



  손편지  


손편지. 중장년층에겐 아련한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학창시절 친구나 연인과 주고받던 손편지를 생각하면 누구나 입가에 미소를 띠게 된다.

아직도 집안 어딘가에 하나쯤 간직해뒀을 법한 편지함.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유통기한이 없는 편지를 꺼내보며 “이때는 이랬지”라며 위안을 삼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가난과 외로움으로 정신발작까지 일으킨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까지 10년에 걸쳐 내놓은 879점의 작품은 그를 위로하는 동생 테오의 마음에서 우러난 손편지 덕분이다. 인도 최초 여성총리 인디라 간디. 그 역시 어린 시절에 독립운동 지도자였던 아버지 자와할랄 네루가 3년간 보낸 옥중편지를 읽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다.

정보기술혁명 이후 편지가 사라졌다. 문자메시지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 등 안부나 소식을 전할 길이 차고 넘친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편지’라는 단어 앞에 ‘손’ 자를 붙이게 된다. 용건을 간결하게 전하는 데 문자메시지만큼 효율적인 건 없다.

거친 내용과 투박한 말투로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게 흠이다. SNS 댓글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건 오래전 일이다. 느리다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감정을 마음속으로 정제시키면서 한 글자씩 정성으로 채워나가는 게 손편지의 매력이다. 쓰는 동안 편지를 읽을 상대방의 생각을 헤아리게 된다. 여러 번 고쳐쓰다가 ‘이건 아니다’ 싶으면 그냥 마음속에 담아두면 그만이다.

북한군에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 아들 편지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타이핑 편지’ 답장을 두고 말이 많다. 청와대는 “봉투나 글씨체가 아니라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닌가”라고 강변했다. 외국 정상에게 보내는 친서도 똑같다는 부연설명까지 곁들였다.

대통령의 진심을 곡해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아버지를 잃은 고등학생에 대한 위로치고는 잘한 일 같지 않다. 대통령 본인이 쓴 걸 비서진이 타이핑을 했다지만, 받는 이에게 진심이 오롯이 전달될 리 없다. 용건만 확인하고 곧바로 지워버리는 메시지나 이메일처럼 받는 즉시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사라질 게 뻔하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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