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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계일보
작성일 2020-03-25 (수) 06:45
IP: 211.xxx.7
사재기 없는 한국



  사재기 없는 한국  


코로나19가 몰아닥친 전 세계에 ‘사재기’ 열풍이 일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이 매장 앞에 길게 줄지어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휴지 등 생필품 매대를 싹쓸이한다.

먼저 차지하려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주먹질이 오가는 일도 벌어진다.

영국 간호사가 ‘생필품 사재기’를 멈춰 달라고 호소한 영상이 조회 수 500만건을 넘었다. 그녀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40시간 교대근무를 마친 직후 들른 슈퍼마켓엔 식료품이 동이 나 있었고, 망연자실한 그녀의 표정이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주인공인 톰 홀랜드는 달걀을 사려다 닭을 구입한 사연을 SNS에 올려 경종을 울렸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두루마리 화장지 한 개를 10달러에 판매한다. 각국 정부가 사재기를 자제하라고 호소하지만 역부족이다. 급기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사재기·바가지 요금을 엄벌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포모(FOMO)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로, 남들 다하는데 나만 빠질 수 없다는 사재기 심리를 대변하는 용어다. 사재기는 경제를 교란하고 사회적 약자의 삶을 불안정하게 하는 해악이다. 초유의 코로나19 확산으로 불안감을 느낀 현대인의 단면이다.

코로나19가 널리 퍼진 나라 가운데 생필품 사재기가 없는 유일한 곳이 우리나라다. 마스크나 손세정제를 갖고 장난친 얌체족이 있었지만, 대다수 국민은 피해지역에 물품을 지원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재난 앞에서 공동체 의식이 빛을 발하는 한국의 저력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사회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다.

외국도 한국의 이런 모습에 흠뻑 반했다. 영국 BBC 등은 ‘국민의 의연한 자세’와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ABC는 ‘국민이 위대한 나라’라고 치켜세웠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국민 덕분”이라고 했다.

정치가 문제다. 여당과 제1야당이 군소정당에 기회를 주자는 선거법 개정 취지를 무시한 채 비례위성정당에 목매고 있다. 대국민 사기극이자, 일종의 사재기다. 정치가 국민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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