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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백영
작성일 2018-10-06 (토) 21:41
IP: 211.xxx.59
[만약에...(10)] 2차대전 종전과 남북분단 문제



 
[만약에...(10)] 2차대전 종전과 남북분단 문제  


(1)
우리나라의 국토 분단의 책임이 일본에게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얼마전에 역사학자이고 언론인이었던 <千寬宇> 선생의 오래전 글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게 되었는데, 문득 이 문제를 한번 검토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 분의 글을 요약해 보면, [일본의 방위청 장관을 지낸 어느 요로 인사가 <한국분단의 책임은 일본에 있다>고 했다는 보도는 ... 귀에 솔깃 합니다.

저명한 법학자 이었던 오다까(尾高朝䧺)교수가 이런말을 했다는 것이 <朝鮮終戰의 記錄>이라는 日書에 나와 있더군요.

-일본정부가 포츠담 선언 수락(무조건 항복)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은 그해 8월 9일 밤이었다.

-그런데 이 결정이, 히로시마(廣島)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8월 6일 직후에 이루어 졌더라면, 소련은 대일 참전의 기회를 잃고(소련 참전은 8월 8일), 한반도의 삼팔선 비극은 아마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8월 9일 밤 회의에서 <초토결전>의 항복 거부론이 이겼더라면, 소련군 기갑부대는 한반도를 그대로 밀고 남하 했을 것이고, 미군은 인명의 손상을 피하여 상륙작전을 아니했을 것이다(미군의 한반도 상륙은 9월 7일). 그동안 소련군은 사하린, 북해도, (일본)본주 북부 까지 진출하여 일본이 미.소 양군으로 분단(점령)되었을 것이다.

-이리 하여 8월 9일 밤이라는 시점의 일본의 결정은, 한반도가 일본 대신으로 양분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만일 이 추론이 맞는 것이라면, 참으로 아슬아슬하게 한일 양국의 운명이 뒤바꾸어 졌다는 말이 되겠읍니다.]

또 이런 대목도 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얼핏 연상되는 것이 있군요.

백년이 조금 넘은 <朝鮮策略>이라는 문서가 그것입니다. 병자 수호 조약으로 첫 개항을 한뒤 4년만인 1880년, 여러 현안 해결을 위해 일본으로 간 修信使 金弘集 일행은, 한편으로 주일 淸國公使館과 접촉하면서 당시의 국제정세에 관한 충고를 청취하곤 했읍니다.

이때 청국 외교관 黃遵憲(황준헌)이 김홍집을 위해 손수 지어 보낸 논설이 <조선책략>이지요.

아라사의 남하는 조선에서 부터 시작되리라는 것, 조선의 급무인 防아(아라사)를 위해서는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結하고, 미국과 聯하면서 자강을 도모해야 된다>는 것이 그 요지 이었읍니다.

특히 개항 직후에 여러 사정이 깔려 있던 일본에 대해서는 <조선은 마땅히 小嫌을 버리고 대계를 꾀하여 舊好를 修하고 外援을 結하라>고 간곡하게 당부하고 있읍니다. [참조 : <한국근대사 산책>千寬宇저, 정음문화사, p34~36, ]

위 글을 읽고, 먼저 잠시 답답한 가슴을 진정 시켜야 했다.

도대체 이 나라는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체적인 책임을 누가 지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든다.

옆의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고, 싸움에 져서 항복을 하는데, 그들의 항복 결단이 이틀 전에 결정을 했느냐 마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나라의 장래의 방향이 정해 지는 한심한 국민들이, 주체였다고 할수는 없다

남이 정한 행위의 결과를 놓고 다행이다 아니다, 하고 마음을 조려야 하는 처지가 주인의 할 짓은 아니다. 한국인은 원래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성향이 강한것 같다. 그리고 남의 탓을 하는 심리에 끌리는 경향도 있는것 같다.

남북 분단이 된것이 좋건 싫건 <우리가 스스로 결정한 어쩔수 없는 결단이 었다>고 말할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대목에서, 우리 조상들이 <안목>이 부족해서 잘못 된 방향으로 질주 했다는 사례를 지적하고 싶다.

우선, <한일합방> 때의 사정부터 보기로 하자.

우리가, 그 당시 국제정세에 너무 어두워 <줄을 잘못 섰다>는 것이다.

역사를 현대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해석하면, 당시 전세계 해양의 질서를 지배하던 강국은 <영국> 이었고, 미국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는 형국이 었다,

영국의 기본 전략과 정책은, 거대한 제국인 러시아가 대양으로 나오는 <부동항>을 찾아 여기 저기서 남쪽으로 촉수를 뻐쳐 올때 마다, 반듯이 좇아가서 이를 틀어 막는 것이 었다, 고 읽을수 있다.

그래서 당시 영국 군인들이 우리 남해안의 <거문도>를 자의로 갑자기 점령한 일도 있었다.

러시아가 <아관파천> 등을 호기로 고종의 신뢰를 얻어 <남하정책>을 펴는 쪽에, 거기에 줄을 서는 듯한 형국을 연출하여대세를 잘못 읽는 우를 범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엄척나게 불리한 코너에 몰린 반면,

그시대 갓 근대화를 시작한 허약한 <일본>은 이를 악물고 전쟁에 달려들어 만인의 예상을 뒤업고 <일로전쟁>에서 대제국 러시아를 밀어 내고 만주에서 견제역을 담당해 주자, 영미 세력이, 일본의 등을 밀어주고 한반도 까지 일본에 내주는 일이 벌어 지게 된 것이다.

역사의 전환기에 훗날에 등장할 <이승만> 같은 경륜있는 지도자가 없었기에 결정적 판단미스를 저지르게 된것이다. 이땅의 역사를 책임지는 <주체>가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여기서 깨달음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2)
또 하나, 역사 평론가, <이덕일> 선생의 <일본의 이른항복>이라는 글을 보자.

[김구 주석은 중국 서안(西安)에서 섬서성 주석 축소주(祝紹周)와 저녁식사 후 담화하던 도중,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들었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내게 희소식 이라기 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라고 한탄했다.

님 웨일스의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장지락)이 ‘금강산에서 온 붉은 승려’ 라고 표현했던 김성숙(金星淑:김충창)은 민족주의 좌파 협동전선인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을 결성하고 임정 국무위원에 취임했다.

그도 항복 소식을 듣고, “전 민족이 함께 걸어나가야 할 앞길은 먹구름 같은 외세에 가로막혀 캄캄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이냐” 라고 회고했다 (참조: 오호! 임정 30년 만에 해산하다, 『월간중앙(1968년 8월)』).

중국 곤명에서 OSS 훈련을 받았던 독립운동가 정운수(鄭雲樹)가 “그때 국내로 침투하기로 되어 있던 제2지대 광복군들이 모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한국독립운동증언자료집:1986)』)”라고 말한 것처럼 국내 進攻작전의 대가로 참전국의 지위를 획득하려던 계획이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출신의 광복군 제3지대 1구대장 박영준(朴英俊)은 일본 패망 직후, 김구 주석이 중국의 장개석 주석에게 중국 내 일본군의 한적(韓籍) 사병 10만 명을 넘겨주면 10개 사단으로 편성해 귀국하겠다고 요청했다고 전한다.

장개석도 동의했지만 미 군정에서 개인 자격의 귀국을 종용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참조:『한국독립운동증언자료집)』).]

나라도 없고 아무 힘없는 <김구>가 연합국의 일본과의 싸움에 적은 병력으로 나마 <참전>을 함으로서, 우리 자신이 <참전국> 자격으로 전후처리에 임할 경우의, 유리한 발판을 만들기 위하여 독립군을 조직, 훈련하고 한 노력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 해야 하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전쟁 당사자로서 존재를 인정받기에는 너무 허약했다.

프랑스 국내의 <레지스탕스>의 지원과 적은 병력으로 나마 2차대전에서 독일과 실제로 전쟁을 했던 <드골 장군>에게, 그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영국의 처칠이 <참전국 지위>를 갖게 해 주자고 루스벨트와 스탈린에게 끈질기게 매달려 동의를 얻어 냈다는 역사의 기록을 읽었다.

3)
다음으로 전쟁 종식을 위하여 강대국 수뇌들이 모여 전략을 의논하고 전후 처리 문제를 협의 했던 <얄타 회담>을 보기로 하자.

역시 <이덕일> 선생은, 같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45년 2월 미·영·소 3국 수뇌의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은 일본군과 싸우는 대가로 과거 제정 러시아의 만주 이권 반환 등을 요구했다.

소련의 참전 조건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1945년 8월 6일, 9일 미국이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원폭을 투하 하자 소련은 부랴부랴 8월 9일 선전포고를 하면서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다.

만주의 (일본)관동군이 소련군에 궤멸되면서 일제는 예상보다 일찍 항복했고,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임정은 통곡해야 했다. 임정이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하려는 찰나 태평양전쟁의 막이 내려진 셈이었다.]

얄타회담에 대한 기록이 일본잡지 <文藝春秋, 2018년 8월호>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 기록에 보면, [제2차세계대전 중에 죽은 일본인은, 군인, 민간인 합쳐서 약 310만인. 그중100만인 이상은 1945년 에 죽었다.

오늘은 <얄타 회담>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다.

종전을 앞둔 이 회담을 둘러싼 움직임 가운데, 얄타회담은 1945년 2월4일부터 11일까지, 쏘련의 크리미아 반도에 있는 피서지, 얄타에서 개최된 수뇌화담이다.

루스벨트 미국대통령, 처칠 영국수상, 쏘련의 스탈린서기장 등이 모여 제2차 대전의 전후처리에 관하여 회담한 것이다.

나는 2회정도 현지에 가 보았다. 놀란것은 스탈린의 의자에만 방석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스탈린은 키가 작은 것에 컴플렠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쏘련의 스태프들이, 타국의 수뇌와 나란히 앉았을 때 어깨의 높이가 같아 지도록 꾸며 놓은 것.

얄타회담은 지도자들의 <수읽기 와 상호견제>의 장이 었다. 얄타회담이 있었던 시기는, 이미 일본과 독일의 패색이 짙어진 시기로, 추축국의 항복은 시간문제 였다.

그래서 연합국의 지도자가 모여서, 전후의 세계질서를 결정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2차 대전후의, 얄타에서 결정된 국가분활안이, 거의 그대로 채택되었다.

일본은 그 당시, 쏘련을 중게로 하여 연합국과의 화평조약을 생각하고 있었다. 독일과 쏘련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일본과 쏘련은 1941년에 중립조약을 체결하고 있어서, 양국은 표면상으로는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쏘련을 의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은 루스벨트와 둘이서만 회담을 하여, 일본에서 보면 말도 않되는 비밀협정을 맺고 있었다.

그 협정의 주요내용을 보면,

1. 1904년의 일본의 배신적 공격(일로전쟁)에 의하여 침해된 러시아에게 귀속되어야 할 제 권리를 전부 회복하는것. 즉 남 사하린 과 그에 인접한 모든 섬들을 쏘련에 반환한다.

2. 쏘련 에게 쿠릴 제도(千島열도)를 넘겨준다.

3. 독일이 패전한후, 3개월 이내에 쏘련은 일본에게 선전포고 를 한다.

1945년 2월의 시점에서 쏘련은, 연합국측에 참가하여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 당시의 루스벨트의 건강상태에 주목하고 있다. 심장이 나뻤던 처칠은, 회담에 의사를 대동하고 있었다.

그 의사 <모-란>은 [처칠 생존의 전쟁]이라는 책을 남기고 있는데 거기에 흥미로운 사실을 적어 놓고 있다. 거기 보면, 루스벨트는 뇌동맥 경화증이 상당히 진행중 이었던 것 같다.

루스벨트는 맑은 정신으로 사물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로서, 스타린의 말하는 대로 밀려서, <이에스> <이에스> 하고 말았다고 추측하고 있다.

루스벨트는 아직 판단능력이 있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죽음에 임박해 있었다>고 모-란은 적고 있다. 루스벨트는 4월 12일 서거하게 되므로, 상당히 병이 진행된 상태 였던 것은 틀림없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이와같은 인간의, 특히 지도자의 건강상테에 간단히 좌우된다. 그런데, 그와같은 비밀협정이 있는 사실을 쏘련이 일본에 알려줄 리가 없다.

외무성이나 군부의 담당자들은 협정을 눈치채지 못했는가. 쏘련이 연합국에 편든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중개역을 부탁하지는 않았을 것임으로. 조사를 해보니, 비밀협정 체결의 정보는 여러 루트를 통해서 들어와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일본정부, 육군은 이 정보를 무시했다.

어쨌던 당시의 일본은 상당히 빠른 단계에서, 쏘련이 연합국측에 가담하여 참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쏘련을 중게로 하는 화평책 을 최우선으로 올려놓고 있었다. 무모한 중개공작에 희망을 걸고, 일본은 종전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이 기사의 의도는  -일본이 무모한 중개공작에 희망을 걸고, 종전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그바람에 일본인 2차대전 사망자 300만명중, 적어도 1945년 종전이 임박한 시기에 죽은 100만명은, 일본의 수뇌부가 종전에 임하여 결정을 하는데 꾸물대지 않고 신속하게 결단을 내렸더라면, 이들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 남았을 것이라고 안타깝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日,(소화사에서 배우는 리-더의 조건)> 半藤一利와 池上 彰,대담기사(일본 (문예춘추, 2018년 8월호, p168~181)]

4)
다시 <한반도 분단>으로 돌아가 보자.

한반도는 어떻게 분단됐는가. 일본의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가 쓴 [[분단 극복의 길은 남북 공존]] 이라는 글을 보자.

[한반도는 어떻게 분단됐는가.

이 단순한 질문에 정면에서 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38도선 설정이 그대로 분단이었다면 답은 비교적 단순하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한반도 분단은 두 개의 대전, 즉 제2차 세계대전과 미소(美蘇)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탄생한 ‘악마’다. 38도선 설정은 별도의 논리를 가진 2가지 프로세스의 제1단계, 즉 분단의 무대 설정에 불과했다.]

[물론 그 무대 설정은 분단의 당사자인 미국과 소련의 전쟁 목적이나 안전보장관을 반영하고 있었다.

대서양헌장이나 카이로선언에서 표명된 것처럼,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이나 영토 불확대 등의 이념을 걸고 2차대전에 돌입한 데 비해,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자신들의 지정학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국 주변에 방어적 공간을 확보하는 일에 집착했다. ]

[그런 뜻에서 포츠담회담 전날 밤 헨리 스팀슨 육군장관이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독립 문제는 ‘극동에 이식된 폴란드 문제’였다.

루스벨트나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폴란드 주권 회복과 자유선거를 요구했으나 스탈린은 “역사적으로 폴란드는 러시아를 공격하기 위한 통로였다”고 주장하며 자국에 유리한 국경선 설정과 친소 정권 수립을 정당화했다. ]


[만약 유럽에서의 전쟁이 미소 양군에 의한 폴란드 분할점령을 동반했다면 전후 사태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소련이 폴란드의 일체성 회복(통일)에 응했을 것 같지는 않다.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폴란드도 분단됐을 것이다. 스탈린은 무엇보다 독일과 일본의 부활과 복수를 두려워해 경계선을 수정해 다음 전쟁에 대비하려 한 것이다.]

[다만 원폭 개발 성공이라는 거대한 군사기술혁명이 없었다면 한반도 분단도 없었을지 모른다. 맥아더 장군은 1945년 11월로 예정된 남규슈(九州) 상륙작전을 위해 모든 자원을 결집하고 있었다.

한반도 침공 작전은 소련군에 맡겨지도록 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한반도에서 미소의 군사적 입장에 균형을 가져왔다. 이것이 감춰진 비극이었다. ] (참조: [오코노기 마사오 / 분단 극복의 길은 남북 공존] 등록일 2018-09-21 오후 3:21:00 (최종 편집일 : 2018-09-21 오후 3:22:00),  http://news.donga.com/Column/3/all/20180921/92110992/1)

이렇게 복잡한 국제관계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약에 원자폭탄의 개발이 늦어지고, 미군이 남쪽에서 치고 올라 오는데 머무적 거리면서 시간이 지연되어 전쟁의 종결이 길게 늦추어 졌더라면, 그리되었다면,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미국의 애결복걸에 못이기는체 하고, 이미 전쟁이 끝난 독일과 싸우든 전력을 만주로 돌려다가 일본의 최후에 일격을 가하려는 느긋한 러시아가, 아시아 극동지역을 휩쓸고 전쟁을 끝내는 것으로 방향이 정해 졌을 것이다.

한반도의 침공작전은 쏘련에게 전적으로 맡겨 졌을 것이며, 분단이고 뭐고 없이 이역시 전적으로 쏘련의 의도대로 한반도 전체가 그 지배를 받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일본이 원자탄 두방을 맞고, 놀라서 즉각 두손을 드는 바람에, <한반도에서 미소의 군사적 입장에 균형을 가져왔다>, 고 하는 오코노기 교수의 해석이 맞는 것 같다.

속수무책으로 쏘련군의 점령을 당하고, 하마터면 북한과 똑같은 처지가 될수도 있었던 한국을, 저 아래 멀리 오끼나와 까지 밖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미군이, 원자탄 한방으로 <전략적 우위>를 일거에 회복하고 멀리 앉아서도 38선 북쪽에서 쏘련군대의 진군을 멈추게 할수 있는 견제력을 발휘할수 있었던 것이 국제정치의 역학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분단이 되고, 통일의 전망은 미지수이지만, 근근히 반쪽 이나마 간신히 건저내서 자유민주주의의 기치아래 대한민국을 세울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것이다.,

여기에 누구 때문이냐, 억울하다, 는 등 주체적 책임감 없는 푸념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5)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글을 보자.

<허동현> 경희대 교수의 <美·蘇 바둑판의 捨石>이라는 글을 보면, [침략전쟁의 죗값으로 동서로 분단되었던 독일과 달리 왜 일본이 아닌 우리가 희생물이 되었을까?

1945년 8월 14일 미국은 일본군 무장해제를 빌미로 소련에 38도선 분할 점령을 제안했고, 다음 날 스탈린은 이를 수락했다. 이 때문에 미국이 반공 보루 구축을 위해 분단을 주도했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이는 사실에 반(反)한다. .]

[미국이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까닭은 얄타협정에서 스탈린이 참전 시점으로 언급한 8월 15일 이전에 전쟁을 끝내 소련의 팽창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련은 수수방관하지 않았다. 두 번째 원폭이 나가사키에 떨어지기 하루 전인 8월 8일 소련군은 대일 선전포고와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미군이 1000㎞ 남쪽 오키나와에 머물던 당시 스탈린은 한반도 전역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그 대가로 극동함대가 태평양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소야(宗谷)해협 통항권이 걸린 홋카이도 북부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9월 12일 런던 외상회의에서 스탈린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격분한 스탈린은 9월 20일 북한에 단독정부 수립 지령을 내렸으며 10월에는 팔로군에 만주 점령을 명했다.

이듬해 국공내전에서 팔로군이 패퇴하자 스탈린은 1948년까지 반격을 위한 후방 기지로 북한을 내주었다. 북한이 중국 내전의 연장 지역이 된 상황에서 남북 분단은 움직일 수 없는 현실로 굳어졌다. 통념과 달리 분단의 주도자는 소련이었다.]

[미국과 소련 모두 한반도에 적대적인 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누가 분단을 주도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소련이 남한과 홋카이도 반쪽을 교환하려 했던 사실과 미국이 극동방위선에서 남한을 제외했던 <애치슨라인>이 명증(明證)하듯

미·소 모두에 한반도는 대마를 잡기 위해 버릴 수 있는 바둑판의 사석(捨石)이었다는 불편한 진실이 38도선 분할의 아픈 역사를 우리가 곱씹어야 할 이유이다.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懲而毖役患)'' 는 경구처럼 대비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평화다.] (참조: [분단의 역사 / 美·蘇 바둑판의 捨石] 등록일 2013-06-08 오후 1:50:00 (최종 편집일 : 2018-09-16 오후 12:04:00) 작성자 허동현)

위의 글에서 -소련이 남한과 홋카이도 반쪽을 교환하려 했던 사실과, 미국이 극동방위선에서 남한을 제외했던 애치슨라인이 명증(明證)하듯 -미·소 모두에 한반도는 대마를 잡기 위해 버릴 수 있는, <바둑판의 사석(捨石)> 이었다는 불편한 진실이 38도선 분할의 아픈 역사 얼마나 허약한 존재로 보였으면 <바둑돌> 같이 다루었겠는가.

6)
결론
우리는 이 땅의 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국제 사회가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데 참여하고 주장을 내놓을 정도의 능력 조차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어느세월에 일본이 아니고 왜 우리가 분단이 되어야 했는가 하고 분해할 겨를이 있는가 우리가 힘이 있고, 지혜로운 판단을 하고, 전국민이 분열되지 않고 단결해 대비할수 있다면, 힘과 지혜와 전략으로 막으면 되는 것이다.

싸움을 피하지 않고 결연한 자세로 맞서는 강건한 국민이 있다면, 대국은 아니라도 강토를 지키는 것은 가능 하리라고 확신한다.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나라를 지키는 일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국민을 이끌어야 하고, 스스로 자신의 군대 경험을 명예로 삼아야 한다.

아무리 머리가 좋는 사람이라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지도자가 되는 길에서 물러 나 있는 풍토가 정착해야 한다. 지난 세기에는 부끄럽지만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외세>가 민족의 운명을 좌우했다고 인정해야 한다.

분단이란,‘독립을 달성하려 하면 할수록 통일이 불가능해지고, 통일을 실현하려 하면 전쟁이 불가피해지는’ 불편한 상태. 였다 고 한 지적은 정곡을 찌르는 해석이다. (오코노기)

미국과 소련 모두 한반도에 적대적인 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누가 분단을 주도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고 한 <허동현> 교수의 해석도 이 시점에서 깊이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힘이고, 결의 이고, 자세 이지, 남이 정해 주는 <결론>이 아니다. 인기, 정당, 자리, 경제력, 이런 것은 나라를 지키지 못하면 다 신기루 같이 한순간에 날라가 버릴 허깨비 들이다.

이제, 악착같이 언덕을 기어 올라 와 조금은 무게가 실리는 존재감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것을 가볍게 다루면 않된다.

주머니에 돈 몇푼 들어 갔다고 마구 퍼먹어서도 않된다. 실력도 없으면서, 운전대를 잡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도 아직 이르다.

글을 마치고 보니, 오늘이 <9.28 기년일>이네요. 우연찮은 일이다.
긴 글을 읽어 준 친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윤 백 영 (2018.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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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5 과학자에 대한 정치적 숙청 晳 翁 2018-12-15
14244 Money is like love 조선닷컴 2018-12-15
14243 금요산책 올림픽공원 모임 사진 舍廊房 2018-12-14
14242 아 ! ~ 세월.... 이순범 2018-12-14
14241 좋은 오늘 되세요 남궁진 2018-12-14
14240 지상파 TV 중간 광고 晳 翁 2018-12-14
14239 스톡홀름 노벨상 시상식 Newsis 2018-12-13
14238 이목회 모임 사진 석장 舍廊房 2018-12-13
14237 겨울 되면 눈이 시려… 눈 건강 돕는 영양소 헬스조선 2018-12-13
14236 Chicago의 박범서 군이 보내온 미국 동창모임 사진 舍廊房 2018-12-13
14235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연 수 2018-12-13
14234 연주곡모음 - 그대, 그리고 나 .... 맑은샘 2018-12-13
14233 통신회사 화웨이(華爲) 晳 翁 2018-12-13
14232 고속열차에는 왜 안전벨트가 없을까? 연 수 2018-12-13
14231 연말연시 스트레스를 날릴 음식 kormedi.com 2018-12-12
14230 김포까지 내려온 夫餘의 금 귀걸이 조선닷컴 2018-12-12
14229 위대한 약속 남궁진 2018-12-12
14228 현역 군인 없는 '이재수 빈소' 晳 翁 2018-12-12
14227 경기50회 송년모임(2018. 12. 11) 55명 참석 KG 50 2018-12-11
14226 [영상] 경기50회 2018년 송년모임 연 수 2018-12-11
14225 감미롭고 애잔한 연주곡 맑은샘 2018-12-11
14224 강추위에 꽁꽁 언 물레방아 Newsis 2018-12-11
14223 한파 속 몸을 따뜻하게 하는 먹을거리 kormedi.com 2018-12-11
14222 한계는 자신이 정하는 것 남궁진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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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0 몸도 따뜻하게 하고, 살도 빼는 겨울 먹을거리 kormedi.com 2018-12-10
14219 아름다운 Pop Song 모음 맑은샘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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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4 All for the love of a girl / Johnny Hort 맑은샘 2018-12-09
14213 '물' 오해와 진실 komedi.com 2018-12-09
14212 날마다 비울 것들 연 수 2018-12-09
14211 일요일 전국 꽁꽁...아침 서울 -12도 '곤두박질' 연합뉴스 2018-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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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9 ‘부자바위’로 유명한 경남 의령의 ‘솥바위’ 퇴 우 2018-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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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7 모자 쓰는 것이 큰 補藥이다 퇴 우 2018-12-08
14206 세월의 나이에 슬퍼하지마라 연 수 2018-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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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3 신선한 아침 향기 같은 모닝 클래식 맑은샘 201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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