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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晳 翁
작성일 2018-01-09 (화) 06:13
IP: 211.xxx.109
문 닫는 세실극장

   

문 닫는 세실극장


1980년대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옆 세실극장 전성시대를 연 주역은 이영윤씨다. 망해가던 기업을 되살리는 마케팅 귀재로 소문난 인물이다. 명동의 시라노백화점, 코리아나백화점 등 다시 일으켜 세운 기업만 10곳이 넘어 '오프너'란 별명을 얻은 그는 문화계 마당발이기도 했다. 서울대 재학 중 탈춤과 마당극, 굿을 공연하며 키운 '끼'를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토선생전' '이중생각하' 같은 히트작을 내며 세실극장을 연극과 전통 연희 성지(聖地)로 키웠다.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세실극장은 1976년 320석 소극장으로 개관했다. 일제강점기 부임해 한국 성공회 중흥을 이끈 제4대 교구장 세실 쿠퍼(Cecil Cooper) 주교의 이름을 땄다. 도심에 변변한 소극장이 없었기에 극단들이 앞다퉈 대관을 신청할 만큼 인기였다. 박정자·손숙 같은 배우들이 이곳에서 연극 혼을 불살랐고, 무명 시절의 강석우도 표 파는 일을 도우며 스타의 꿈을 키웠다.

▶세실극장이 그제 42년간의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극단 측이 월 1300만원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한다. 90년대 김광석·장필순 같은 가수들의 콘서트장으로 인기를 모았고, 2000년대 넌버벌 뮤지컬 '난타'와 '점프'를 올릴 때는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로가 연극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관객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1975년 개관한 삼일로 창고극장은 세실극장과 함께 1970~1980년대 소극장 운동을 이끈 메카였다. 추송웅을 스타로 만든 모노드라마 '빠알간 피터의 고백' 같은 흥행작을 쏟아냈다. 이곳도 운영난을 견디다 못해 2015년 10월 문을 닫았다. 다행히 창고극장은 서울시가 10년간 임차해 올 상반기 재개관을 앞두고 있다. 소극장이나 사립박물관 같은 민간 문화 시설은 늘 운영난에 시달린다. 근현대 문학사 귀중 자료를 갖춘 평창동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남편(이어령 교수)이 인세와 원고료로 대주는 운영비 월 300만원으로 꾸려왔는데 요즘은 어렵다"고 했다.

▶세실극장은 삼일로 창고극장과 함께 서울시가 지정한 미래 유산에 올라 있다. 문제는 민간 자산을 갖고 서울시가 생색만 내지 별다른 지원은 안 한다는 점이다. 건물주가 재산권 행사에 방해가 될까 봐 꺼리는 경우까지 나온다. 예술을 꽃피우려면 선의(善意)만으론 충분치 않다. 소득 3만달러 시대에 유서 깊은 소극장 하나 지키지 못하는 게 이 나라 문화·예술의 수준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08/20180108025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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