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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사 옹
작성일 2017-08-09 (수) 15:25
IP: 121.xxx.17
[척 피니(Chuck Feeney)] 돈은 어려울 때


등록일   2008-12-11 오후 8:23:00  (최종 편집일 : 2015-02-06 오후 4:13:00)

[강천석 칼럼] 돈이 큰 일·좋은 일 할 수 있는 계절이다

강천석·주필

1997년 1월 23일 뉴욕타임스 1면에 '아무도 모르게 6억 달러를 기부한 피니'라는 기사가 실렸다. 세계 주요 공항의 면세점 체인 '듀티 프리 쇼퍼즈'의 대주주였던 척 피니(Chuck Feeney)가 자신의 이름을 감춘 채 1982년부터 16년 동안 1500곳에 6억1000만 달러를 기부해 왔다는 내용이다. 뉴욕타임스의 이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피니의 돈을 받은 개인과 단체들은 대부분 그 기부금이 수많은 익명(匿名)의 기부자를 대신해서 자선활동을 벌이는 조직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던 '뉴욕컨설팅회사'에서 들어온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기사는 피니가 15달러짜리 손목시계를 차고, 낡은 회색 레인코트를 즐겨 입으며, 비행기는 3등석을, 시내에선 택시를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피니가 비밀리에 만든 애틀랜틱 자선재단은 당시로선 '포드', '켈로그', '로버트우드 존슨' 재단에 이어 네 번째 규모였다.


이 기사는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 뜨거운 화제로 떠올랐으나,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피니가 66살이라는 설명과는 달리 사진 속 모습은 40대의 팽팽한 얼굴이었다. 취재진이 피니의 가장 최근 사진이라고 구한 게 17년 전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고집이 워낙 강했던 피니는 변변한 사진 한 장도 남기지 않았다. 재단 관계자에겐 비밀 엄수 규정을 부과했고, 기부를 받은 측에겐 피니의 이름이 새어나가면 기부를 중단하겠다고 단단히 엄포를 놓았다.


이 기사로 미국 부자들 소식에 훤하다는 '포브스' 잡지가 작은 망신을 당했다. 포브스는 그 무렵 10여 년간 피니를 미국 100대 부자 명단의 23위 자리에 올려놓았었다. 피니가 1996년 면세점 주식을 16억 달러에 매각했을 때 피니의 총재산은 35억 달러였다. 그러나 피니는 84년에 남 모르게 재산의 반을 자선재단에 넘겼고, 면세점 주식을 판 돈도 그해 재단에 내놓아 손에 쥐고 있는 개인 재산은 200만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다섯 자녀에겐 비행기를 탈 때 아버지보다 한 등급 위인 2등석을 탈 만큼의 재산만 물려주었다. 2007년까지 피니의 자선재단은 40억 달러를 기부했고, 해마다 기부 금액을 재단 자산과 자산 운용 수익의 5%대에서 10%대로 늘려 2016년경엔 자산을 모두 기부하고 재단을 해산할 계획이다. 그 무렵이면 총 기부액은 72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피니가 재단 해산 시기까지 미리 정한 것은 재단이 영구화(永久化)되면, 재단 관계자들이 재단의 설립 목적을 잊은 채 기부금을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을 위험이 있다고 생각해서다.


우리는 지금 1997년 IMF 겨울 이후 가장 매서운 겨울 속으로 들어섰다. 공식 빈곤층이 153만 가구, 가장이 실업자인 가구가 268만 가구, 노인 혼자 가구가 93만 가구,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194만 가구, 부모 한쪽밖에 없는 144만 가구, 여기다 수천 명의 소년소녀 가장과 노숙자들 품으로 칼바람이 파고들고 있다.


2004년 1월 2일 영국 보수당 당수 마이클 하워드는 '더 타임스'에 보수주의의 신념을 16개 항으로 요약한 광고를 실었다. 화제가 되었던 것은 '나는 믿지 않는다'로 시작되는 3개 항이었다. '나는 누군가가 부자가 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가 좋은 교육을 받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쁜 교육을 받는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가 건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병을 앓는다고 믿지 않는다'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교육받은 사람과 못 받은 사람'으로 국민을 두 패로 갈라 싸움을 붙여 결국 나라를 가라앉게 만들고 마는 좌파 포퓰리즘을 경계한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은 안방 윗목의 자리끼도 꽁꽁 얼어붙는 엄동설한(嚴冬雪寒), '가진 사람' '배운 사람' '건강한 사람'이 더 밝은 눈으로 주변의 춥고 어둡고 아픈 곳을 살피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이 겨울을 무사하게 통과하기 힘든 시절이다.


한 손엔 옷가지를 넣은 가방, 다른 한 손엔 '뉴욕 타임스', '더 타임스', '가디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등 온갖 신문을 잔뜩 우겨 넣은 비닐 백을 든 채 비행기 3등석 탑승 줄에 서 있는 피니의 말이 절절하다. "돈은 어려울 때일수록 더 큰일,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입력 : 2008.12.11 18:35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2/11/2008121101530.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headline1&Dep3=h1_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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